그들이 절을 찾은 까닭은

홋카이도 삿포로시 한복판에 니시혼간지 삿포로 별원(이하 니시혼간지)이라는 사찰이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의 리듬에 동요되지 않던 그 곳이, 얼마 전부터 200여명의 사람들로 들썩이고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워크샵 참가자들이다. 어랏,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찰 풍경이란 고요함과 평온함 아니었던가. 사찰의 방에 짐을 풀어 놓은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을 여지없이 배반한다. 법당 앞에서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사람, 술잔을 기울이다 얼큰하게 취한 사람, 흥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그러나 누구하나 이런 행동에 주의를 주거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아무리 친절한 일본이라지만 사찰일진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며 찾은 워크샵 참가자들이 멀쩡한 사찰에서 이러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들은 이 절을 찾은 걸까. 자, 그 속사정을 알아보자.

니시혼간지 사찰 전경 | ⓒ김성용, 2006

니시혼간지 사찰 전경 | ⓒ김성용, 2006

사찰에서 흥겨운 술자리  | ⓒ김성용, 2006

사찰에서 흥겨운 술자리
| ⓒ김성용, 2006

법당안의 워크샵 참가자들  | ⓒ김성용, 2006

법당안의 워크샵 참가자들
| ⓒ김성용, 2006

 

사연은 이렇다

니시혼간지에는 강제연행 된 사람들의 유골함이 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1999년 2월, 토노히라 요시히코(강제연행ㆍ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선생님은 사찰측에 조사를 신청한다. 그리고 다음 해 2월에서야 유골함이 있다는 확인을 받는다. 곧 니시혼간지 홋카이도 교단에서 조사위원회가 결성되어 2년 동안 조사를 벌인 결과, 이름, 본적 등이 기록된 한국ㆍ일본ㆍ북한ㆍ중국 등 출신지역도 다양한 101명의 희생자명부가 발견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기록이 뒤늦게 발견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이렇게 발견된 101명의 유골이 서로 뒤엉킨 채 세 개의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101구의 유골함들은 어느 기업이 보관하고 있다가 그 회사가 도산하면서 이 절에 맡겨진 것이다. 사찰 측은 이 한이 사무치는 유골들을 방치하다가 관리하기 귀찮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1997년에 합장시켜 버린다. 이 중 조선인의 유골은 70여 구 정도로 홋카이도에 강제연행 된 사람들임이 유력시 되고 있다.

지하실에 위치한 납골당 입구  | ⓒ김성용, 2006

지하실에 위치한 납골당 입구
| ⓒ김성용, 2006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재 희생자명부에 담긴 이름과 본적 등을 단서로 유족을 찾기 위해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접촉되어 홋카이도를 방문한 유족은 두 가족뿐이다. 한국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일본 현지인들은 일본 기업과 니시혼간지에 사과를 요구하며 유족회를 만들었다. 니시혼간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종교와 국경을 넘어 강제징용 된 사람들의 유골 처리에 나서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업 측은 유골을 합장한 것에는 사과하지만, 강제징용의 부분에선 아직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뿐 많은 기업과 사찰은 강제징용의 사연을 품은 유골들을 소장하거나 매장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이러한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일본 정부는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조사를 시작한 상태이다.

납골당 내부 | ⓒ김성용, 2006

납골당 내부 | ⓒ김성용, 2006

비극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니시혼간지의 어두운 비밀을 보기위해 지하로 내려가니, 아득한 과거의 상흔이 지하실의 음습한 기운과 함께 달려든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앙상한 뼈가 재로 변해 항아리에 담겨 있을 뿐이다. 그들이 관 알선 모집이라는 명목 하에 강제노동 현장으로 떨어졌을 때, 이렇게 버려지듯 산산조각 나 이국땅 지하실에 갇히게 될 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그들은 가혹한 노동으로 고달픈 하루 속에서도 언젠가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꿈꾸며 살았을 것이다. 강제연행ㆍ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을 이끌고 있는 토노히라 요시히코 선생님은 말한다. “조사를 시작한 것은 1999년이고 니시혼간지에서 합장을 한 것은 1997년입니다. 제가 2년만이라도 빨리 조사를 시작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이국땅에 잠든 영혼들에게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넘어서 이러한 비극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시혼간지 삿포로 별원  | ⓒ김하늬, 2006

니시혼간지 삿포로 별원
| ⓒ김하늬, 2006

니시혼간지의 역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영혼들에게 니시혼간지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시간에 쫓기고 귀찮다는 이유로 101명의 유골함을 세 개의 항아리에 나눠 방치한 채 이를 은폐하려 했다. 재로 변해버린 인간의 자취를 마치 설탕과 소금을 섞듯 아무렇게나 버려둔 것이다. 강제노동의 억울한 한을 그들은 듣지 못했을까. 그 피맺힌 절규를 외면한 채 죽은 이를 또 한번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행했다는 것에 우리는 경악과 분노로 할 말을 잃는다. 희생자명부에 기록된 101명 가운데 조선인으로 추정되는 70여명의 사람들을 마주할 때, 그 안타까움과 원망은 더해만 간다. 사람들은 망각 위에 집을 짓고 산다더니 삶을 초월하려는 승려들이 거주하는 사찰조차도 어리석은 인간의 굴레를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 앞에 정직해야할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조차도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원죄를 지은 이 절은 그래서 오늘도 젊은 참가자들의 행동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제 니시혼간지는 역설적으로 홋카이도에서 강제연행 조선인 희생자 발굴을 위한 동아시아 워크샵을 지원하고 있다. 니시혼간지의 사례처럼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이제 동아시아의 공존과 평화를 모색할 때이다.

글ㅣ2006 동아시아 공동워크샵 미디어팀ㅣ조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