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가 노니는 땅

홋카이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산이 사라지고 목초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목초지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이 여유롭게 돌아다닌다. 일본인들도 이국적인 풍경이라며 찾는 홋카이도 북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오늘 나는 발굴장으로 향하던 중, 너무나 아름다운 목초지를 보았다. 산은 커녕 야트막한 언덕 몇 개만 보이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목초지였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에게 저 목초지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름다운 목초지가 바로 지금은 사라진 아사지노 일본 육군 비행장 터였고, 너른 평야는 비행기 이륙을 위한 활주로였던 것이다.

한가로이 노니는 젖소   ⓒ김성용, 2006

한가로이 노니는 젖소
ⓒ김성용, 2006

아사지노 육군 비행장

도대체 이 비행장의 과거는 무엇이기에 내가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던 것인지 차근차근 이야기 하겠다. 일본 최북단에 자리한 아사지노 육군 비행장은 오호츠크해 방향으로 비행기를 출발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942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 비행장 건설에는 그 수를 파악할 수 없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사찰에 보관중인 조선인 사망자 명부만도 100명이 넘고,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소한 400여명의 조선인이 이유도 모른 채,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

비행장 활주로 터의 너른 초지  ⓒ김성용, 2006

비행장 활주로 터의 너른 초지
ⓒ김성용, 2006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조선에서 강제징용된 노동자들은 모두 타코베야라고 불리는 감옥과 다를 바 없는 곳에 수용되었다. 조선에서 강제로 연행되다 시피 끌려온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이어지는 노동, 부실한 식사, 가혹한 폭력 뿐 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탄한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동산을 없애고, 계곡을 메꾸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쓰러진 노동자 일부는 그대로 매장되기도 했다.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했고, 이렇게 죽어간 노동자들은 “관리”를 위해 불에 끄슬려진 후 작은 구덩이에 마구 묻혀버렸다.

아직도 남아있는 플랫폼. 길이 나 있는 곳이 과거 철도가 놓였던 자리이다 ⓒ김성용, 2006

아직도 남아있는 플랫폼.
길이 나 있는 곳이 과거 철도가 놓였던 자리이다
ⓒ김성용, 2006

비행장 앞 정류장

지금은 사라진 비행장으로 향하던 철도 주변에는 ‘비행장 앞’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이 있다. 철도는 사라졌지만, 군데군데 썩어서 구멍이 뚫린 나무로 만들어진 플랫폼이 남아있다. 그 플랫폼에 올라 기차에서 내릴 노동자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음습한 오호츠크해의 차가운 바람은 가슴이 턱 막히게 불어오고 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민가조차 보이지 않는 드넓은 대지. 그저 답답하고 막막할 뿐이다. 이 땅은 곧 강제징용노동자들의 피눈물로 활주로의 모양이 되어갔겠지. 비행장의 모습이 갖춰지면 갖춰질수록 쓰러져간 노동자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갔겠지.

비행장 앞 정류장  | ⓒ김성용, 2006

비행장 앞 정류장 | ⓒ김성용, 2006

남은 것들

부대의 위문과 감시 초소의 기초였던 콘크리트 건축물이 여전히 을씨년스럽게 초지 위에 남아있다. 그 문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조선인 젊은이들은 알고나 있었을까? 드넓은 대지 위에 드문드문 자리한 언덕은 비행기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방공호였단다. 그리고 그 작업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강제징용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 유골발굴단, 2006

강제징용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 유골발굴단, 2006

남은 자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저 소떼들. 너희들이 노닐고 있는 이 땅이 바로 조선인 강제징용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 그렇게 쓰러지고 죽어간 조선인들이 버려지듯 묻혀진 곳이 바로 이곳이란 걸 그 누가 알아줄까? 바람이 많아 풍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들고 그 전기가 남아 전기회사에 되파는 자연친화 마을, 사르후츠무라. 그 바람이 오늘,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땅에서 죽어간 조선인 강제노동자에게 얼마나 시린 바람이었을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정말 너무 늦었지만 그 분들의 영혼을 달래드리려고 한국, 일본, 중국의 젊은이들이 찾아왔다는 걸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나직히 고한다.

오호츠크해의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비행장터 주변의 하늘 | ⓒ조일동, 2006

오호츠크해의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비행장터 주변의 하늘 | ⓒ조일동,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