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베쓰를 대표하는 88m의 대관음 불상

 

아시베쓰시(芦別市)

아시베쓰 발굴지 → 슈가쿠지 →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 기념관

삿포로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라벤더 등의 꽃밭으로 유명한 후라노 비에이 등과 인접해 있는 아시베쓰는 아이누어로 ‘깊은 강바닥의 위험한 곳’이라는 뜻으로, 지명의 유래에 걸맞게 시 면적의 약 88%가 산악, 산림 지대이며 평균 적설량이 약 4m에 달하는 곳입니다.

산이 많은 만큼 석탄 산업이 번성하던 곳으로 곳곳에 탄광들이 즐비했습니다. 미쓰이(三井) 재벌이 경영했으며, 홋카이도청의 보고서에

▲1941년 3월 제1갱 야외작업 (왼쪽) 1943년 6월 작업전 정열한 노무자 (오른쪽)

의하면1,905명의 노무자들이 끌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시베쓰시 당국은 전쟁 후 일관되게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했으나 시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7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아시베쓰에서 발굴과 주민들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곳 3곳을 소개합니다.

아시베쓰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아시베쓰 발굴지가 있고, 북으로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탄광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발굴에도 함께 했던 슈카쿠지가 있으며, 다시 걸어서 20분거리에 조선인 강제노동과 관련된 운동의 선두에 섰던 관장님이 계시는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 기념관이 있습니다.

일본 내 혐한 감정과 헤이트 스피치가 점점 확대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적 사실을 밝힌 아시베쓰의 힘은 무엇일지 알아보고 쏟아지는 별도 감상해보면 어떨까요.

 

아시베쓰(芦別) 발굴지

2005년 11월 20일에 아시베쓰 탄광에서 일했다는 이시카와 이와오(石川嵓) 씨가 ‘별이 내리는 백년기념관’을 찾아와 하세야마 관장님에게 아래와 같이 예전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1950년경, 미쓰이 아시베쓰 광업소 종업원이고 노무과에 근무했던 가와모토 상룡(川本尚龍)씨를 따라 니시 아시베쓰쵸(西芦別町) 오오마가리(大曲)의 광원 클럽 아래쪽에 있는 강가의 빈터에 갔더니 가와모토 씨가 분향을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전시 중에 기숙사에서 학대를 받아 죽었던 동포(조선반도 출신자)와 식용으로 죽였던 말을 매장했다고 했다.

가와모토 씨는 1918년인가 19년에 지금의 한국에서 태어났다. 전쟁 전 와세다 대학 전문부를 졸업하고 미쓰이 광산주식회사 아시베쓰 광업소에 취직했다. 당시 조선반도 출신자의 직원 채용은 없었는데 종업원이었다. 아마 전후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다고 생각된다. –중략-

가와모토 씨는 이른바 메모쟁이로, 전쟁중 미쓰이 아시베쓰 광업소내에서 벌어진 일을 극명하게 기록한 ‘가와모토 일기’를 20여권 남겼을 것이다.

그 내용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토목 건설이나 철도 건설에서의 조선인, 중국인의 노동 실태, 사망 처리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신앙심이 두터운 가와모토씨가 동포들의 말로 불쌍하게 생각해서 해마다 찾아간 것 같다 나도 년에 2~3번 동행했다.

내 기억으로는 열몇 군데서 분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목욕탕 통 같은 것에 넣고 매장된 수가 10명을 넘는다고 생각된다. 미쓰이 아시베쓰 광업소 직할의 조선인 노무자의 경우는 반드시 역장(役場)에 제출하고 매화장인허가를 신청해 기록을 남겼다고 들었다.

‘암매장’ 되었으면 하청업자인 가와구치구미(川口組)나 나루시마구미 (成島組)이거나 아니면 그 밑의 하청 업자가 고용한 조선인 노무자일 가능성이 있다.

아시베쓰시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기념관’의 하세야마 다카히로 관장님은 지역 주민을 통해 조선인 강제노동과 매장에 관련한 사실을 듣게 되었고 주민들과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불교회 및 향토사 연구회 지자체 등 백방으로 지역주민들의 협력을 요청하고 2012년 4월 홋카이도 포럼에 이러한 내용을 알려 홋카이도 포럼에서 4월 말에 답사를 가게 됩니다. 현장에는 암매장 지점으로 추정되는 빈터 근처에 당시 조선인 노무자 수용시설 세이호료(静峰寮)의 콘크리트 토대가 남아있었습니다.

▲암매장 지점으로 추정되는 조선인 노무자 수용시설의 콘크리트 토대

▲암매장 지점으로 추정되는 빈터

2012년 8월23일~ 29일까지 드디어 아시베쓰 백년기념관과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의 주관으로 ‘아시베쓰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 이 진행되었습니다.

▲현장 항공사진(1965년 촬영)

아시베쓰 불교회, 아시베쓰 향토사 연구회, 소라치민중사강좌, 강제동원·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동아시아공동워크숍 등 한-일의 여러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함께한 발굴지는 아시베쓰 탄광촌 옆을 흐르는 강가의 공터였습니다.

강가를 따라 80mx30m의 면적을 조사하였는데 지난 수십년 간 홍수로 인한 강의 범람 등으로 현장이 훼손되었고 매장으로 추정되는 지점들은 확인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유골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발굴 단장을 맡았던 박선주 교수는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유골 발굴은 국가가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해 발생한 희생자들을 예우하는 민족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물론, 희생자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윤리적 의미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시베쓰 발굴 당시의 모습

매장지가 강가가 아니라 기존의 다른 발굴지처럼 공동묘지 주변이나 산 속이었다면 발굴이 가능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지만, 이와 같은 시민 차원의 노력은 국가로부터 부정당하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차로 여행을 한다면 강가 바로 옆의 발굴지에 들러보면 어떨까요.

 

〒075-0161 北海道芦別市西芦別町大曲(Omagari Nishi Ashibetsu-cho Ashibetsu-shi, Hokkaidō)  홋카이도 아시베쓰 시 니시아시베쓰쵸 교통 아시베쓰역을 기준으로 차로 국도 452호선을 경유하여 10분  아시베쓰강 강변 큰 굴곡

구글지도 https://goo.gl/maps/aSW3US6534B2

 

슈가쿠지(秀岳寺)

▲슈가쿠지 본당(오른쪽)과 위령탑 추모비의(왼쪽) 전경

슈가쿠지는 서아시베쓰(미쓰이 아시베쓰 탄광)에서, 창립 제1세대 코지마 료 선사가 1941년 미쓰이 광업소 협력하에 창립한 사원입니다.

다른 종교의 활동도 아직 없었던 지역에서 포교 교화를 넓혀가는 동안, 종단 신도는 물론, 탄광내외 직원, 종업원 및 한국, 조선, 중국 등의 강제노동자 및 타코베야 노동자, 수난자, 탄광에 관련된 희생자들을 공양하고 또한 유골을 맡아 정성껏 위령을 해왔습니다.

▲본당 왼쪽에 있는 위령탑 및 추모비

슈가쿠지 왼쪽에 세워져있는 ‘아시베쓰 탄광 내외 순직자 작고자 위령탑 (芦別炭鉱内外殉職者物故者慰霊塔)’ 비문에 의하면 제2세 코지마 요시히데 주지 스님대에 이르러 쇼와 52년(1977년) 제2 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종전으로부터 33회기를 맞아, 맡아 왔던 다수의 유골을 히가시라이죠쵸(東頼城町)에 합사 매장했으나, 그 후 쇼와 62년(1987년) 절 이전과 함께 이곳에 석탑과 모든 유골을 이동해 왔다고 합니다.

전쟁과 인권 유린의 재화(災禍)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원과 공양을 하며, 모쪼록 이 공양이 널리 모두에게 미쳐 저희들과 중생과 모두 함께 불도의 길로 성불하길 빌고 있습니다.

슈가쿠지는 아시베쓰 발굴 당시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준 사찰로 발굴 작업 후 이 곳에서 보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발굴이 끝난 후에는 후원금에서 남은 돈과 슈가쿠지의 후원 등으로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가 설치되었습니다. 추도비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발굴후 세워진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

<아시베쓰 강제연행 희생자 추도비>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일본은 조선반도 로부터 7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인을 일본 국내로 강제적으로 연행하여, 탄광이나 토목 공사 등에 종사시켰다. 미쓰이 아시베쓰 탄광에 연행되었던 조선인은 2천명 이상이다.

그들은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아시베쓰 강변에 세워진 8동의 숙소에서 궁핍한 생활을 보냈다. 많은 희생자가 있었으나 정중히 장례도 치뤄지지 않은 채 강변에 몰래 매장된 희생자도 있었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2012년 8월 24일, 아시베쓰 강변에, 일본, 한국 등으로부터 160명의 남녀노소가 모여, 희생자를 찾기위해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4일간의 발굴로 유골은 발견되지 않고, 매장흔적으로 보이는 구멍만을 발견했다. 심각한 범람으로 아마도 유체는 흘러갔을 것이다.

유골과는 만나지 못했으나 참가자는 희생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모음과 동시에 국경이나 민족을 넘어선 우정을 깊이할 수 있었다. 다시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여기에 희생자 추도의 비를 건립한다.

 

2013년 8월 21일
아시베쓰강변 강제연행희생자유골발굴조사실행위원회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공동워크숍 일동

〒075-0041 北海道芦別市本町1151(1151 Honchō, Ashibetsu-shi, Hokkaidō 075-0041) 교통 아시베쓰역에서 차로 5분 걸어서 15분

구글지도 https://goo.gl/maps/eYCRFGmPvNr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기념관(里百年記念館)

아시베쓰 발굴의 주역인 하세야마 타카히로 씨가 관장으로 역임하고 있는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기념관’은 아시베쓰 개척 100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특히 1912년 다이쇼부터 1989년 쇼와에 걸쳐 아시베쓰에서는 문학, 연극, 음악 등 다채로운 문화를 꽃피웠다고 합니다.

“탄광 관련해서 전국에서 아시베쓰로 모인 사람들이 모임을 결성해서 문학 동아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강사를 초청해 공부를 할 정도로 열심이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시민들이 함께 또는 경쟁하 듯 문화가 발전해 갔습니다. 이러한 높은 의식이 아시베쓰의 문화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하세야마 관장님.

어떻게 아시베쓰에서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던 정부를 인정하게 만들었는지, 어떻게 주민들과 합심해서 증언을 확보하고 관련 조사를 하고 발굴을 주최하게 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듯 합니다.

홋카이도에서 탄광 개발이라는 똑같은 역사를 겪었지만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는 지역의 힘은 어디서 오는 지 아시베쓰의 100년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탄광 자체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다른 탄광 도시와는 달리 아시베쓰는 기존에 농업이 기반인 마을이었고 한 때 탄광 도시로 발전했다가 다시 농업 마을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별이 내리는 마을 백년 기념관에서는 자연과 문화와 사람이 함께 하는 아시베쓰에 대해 관장님께 직접 해설을 부탁드릴 수도 있다고 하니 더욱 의미있는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산림으로 둘러쌓여 깨끗한 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아시베쓰에서 1박을 하면서 돌아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매력적이겠습니다.

 

〒075-0014 北海道芦別市北4条東1丁目1 (1 Chome-1 Kita 4 Johigashi, Ashibetsu, Hokkaido 075-0014) 교통 아시베쓰역에서 3분거리의 아시베쓰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후 홋카이도중앙버스를 타고 아시베쓰츄가쿠코젠(芦別中学校前) 에서 내려 도보 5분 연락처 +81 124-24-2121 관람시간  9:00~17:30(입장 17:00까지) 휴관일 12/29~1/3, 11월~4월은 월,화 5월~10은 월 요금 일반 200엔, 고등학생 100엔, 중학생이하 무료
Web https://go-to-ashibetsu.com/media/2017/03/09/119

구글지도 https://goo.gl/maps/kR39fwhvpwQ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