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의 인공호수 슈마리나이호

 

슈마리나이(朱鞠)

슈마리나이호 우류 제1댐 → 기원의 상 → 사사노보효 전시관 → 추도묘

홋카이도 북부의 슈마리나이는, 홋카이도 최대의, 한때는 동양 최대라고 불리던 인공 호수인 슈마리나이호 (朱鞠内湖)와 우쓰나이호(宇津内湖)를 중심으로 한 자연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홋카이도에서 처음으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발굴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슈마리나이호 우류 제1댐

슈마리나이의 우류댐은 전시 중의 전력 공급을 목적으로 1938년 ~ 1943년 전시 체제 기간에 수력 발전을 목적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저수지 면적은 500㎢, 최대 출력은 100kW로, 이 거대한 댐 공사에 일본 하류 계급의 저임금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되었습니다.

당시 공사 관계자에 의하면 인력이 최대로 동원되었을 때가 7,000명 정도였다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없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강제연행은 1939년 시작하여 자료에 의하면 총 3,000명 이상이 슈마리나이에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1942년 6월 이후 완공시까지의 자료는 없지만 대략 추정해본다면 3,000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류댐 공사현장

위의 사진에서 당시 공사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아랫쪽에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하얀색 점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현대처럼 기중기도 제대로 없던 시대 거의 사람의 힘으로만 이러한 공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심메이선(深名線) 철도공사는 댐공사 전에 시행되었는데, 댐으로의 자재 수송을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저임금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동원된 노동자의 숫자를 명백히 제시하는 자료는 희생자 명단밖에 없습니다.

 자료출처 일본인 한국인
호로카나이무라(幌加內村) 95 15 110
후렌무라(風連村) 44 14 58
코겐지과거장(光顕寺過去帳) 29 7 36
 합 계 168 36 204

<표1. 일본인, 한국인 별 희생자 수>

이들은 영하 41.5 ℃ 를 기록하는 혹한의 땅에서 추위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매화장인허가, 과거장, 위패 조사로 판명된 희생자는204명(일본인 168명, 조선인 36명)으로 공사지 주변 조릿대 숲 속에 집단으로 매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희생자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댐 공사 중 높은 곳에서 추락해 사망한 시신을 그대로 두어 콘크리트로 덮는 등 확인이 어려운 희생자들의 사례도 많으며, 창씨개명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수치를 훨씬 웃돌 것입니다.

강제노동자들의 희생은 우연한 기회에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1976년 가을 친구들과 함께 슈마리나이 호수에 놀러갔는데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을 한 할머니가 그들을 불렀습니다. 코켄지(光顕寺 후에 사사노보효 전시관)에 잔뜩있는 위패들이 무슨 사연이있는 것인지 모르니 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코켄지는 1934년경에 세워졌는데 마을 사람들이 줄고 상주하는 스님도 없어 몇 일 후면 허물어질 예정이었습니다.

▲황병만 조선인 이름 위패

가서보니 위패는 10~20대의 젊은 남자가 대부분이었고 일본인 외에 조선인 같은 이름도 있었습니다.이를 위해 소라치민중사강좌(空知民衆史講座)가 결성되었고, 1976년10월 부터는 매화장기록부 조사를, 1977년부터는 댐공사 조사를 시작하여 관련 자료 및 증언을 모았습니다.이 위패를 보고 왜 이 젊은 나이에 많은 청년들이 이 곳까지 와서 죽어갔으며 34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위패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문을 품었고 무언의 위패가 증언하는 철도공사와 댐공사의 희생자 실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를 직접 경험한 채만진씨가 자신의 체험에 대해 강연도 하고 함께 활동했습니다.


▲공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우류 제1댐 공사전경

그리고 1977년 2월 본적이 확인된 14명 앞으로 즉, 죽은 이들 앞으로 편지를 보냅니다. 35년이나 지나 가족들이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지, 도착은 제대로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3월 초부터 하나 둘씩 답장이 도착해 7통이 배달되었습니다. 이로써 멀고 먼 홋카이도의 희생자들이 34년이나 지나 처음으로 한국의 유족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이 후, 소라치민중사강좌, 지역주민들, 재일조선인, 홋카이도의 선주민인 아이누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1980년부터 1983년 4차에 걸쳐 총 16구의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이 후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들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발굴에는 많은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고 한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1989년 어느 날 미국 대학에서 강사를 하며 연구를 위해 홋카이도를 찾아온 정병호 교수가 우연히 도노히라 스님을 찾아 오게 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국에 돌아가 교수가 되면 꼭 고고학 훈련이 된 학생들과 함께 오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은 1997년 여름 처음으로 실현됩니다.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 (후에 ‘동아시아공동워크숍’으로 변경)이라는 이름으로7월 31일 슈마리나이 코켄지에 한국인 46명, 재일동포 15명, 일본인 40명, 스탭 81명, 보도 관계자 등 포함 총230명이 모여 낮에는 발굴을 하고 밤에는 관련 학습과 토론 그리고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때로는 입장과 문화의 차이로 격렬한 토론도 싸움도 눈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일을 오가며 발굴과 증언채록 관련 역사 연구가 이어집니다.


▲1997년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 단체사진

1997년에는 총 4구가 발굴되었고,  유골 중 1구는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의 유골로 밝혀져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고, 2구의 유골은 조선인 희생자의 것으로 확인 후 유족 찾기를 진행했습니다.

2001년 2차 발굴이 진행되어 두 구가 발굴되었고 감식 결과 한 구는 노인으로, 다른 한 구는 40대로 판명되었습니다.

이후 2006년, 2009년 2010년에 아사지노 구육군비행장에서의 발굴이 이어졌고, 2012년에는 아시베쓰에서 2013년에는 히가시카와로 발굴은 계속되었습니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워크숍을 통해 발굴에 참여하고 한국에서의 현장 답사 및 증언 채록 등의 워크숍에 참여한 2,000명이 넘는 한-재일-일의 사람들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면서 말을 걸고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배우며 만남을 이어왔습니다.

42년간 강제노동 희생자에 관련된 조사 및  발굴과 유골 봉환을 이어온 슈마리나이에서는 모두 4곳을 소개합니다. 강제노동 희생자의 공사 현장인 우류 제1댐과 슈마리나이호, 1991년 세워진 기원의 상,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된 사사노보효 전시관(구 광현사), 그리고 강제노동 희생자를 위한 추도묘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 여행에 욕심이 있는 분이라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속에 뭍혀있던 강제노동 희생자와 홋카이도 최초 한일 공동 발굴이 있었던 슈마리나이를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슈마리나이호 우류 제1댐(朱鞠湖 雨第一ダム)

▲우류 제1댐의 전경

우류 제1댐 공사로 탄생하게 된 인공호수 슈마리나이호.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이 호수의 한 편에는 ‘슈마리나이에 사랑을 담아서’라는 글귀가 적힌 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댐 공사 당시의 자재를 이동하기 위해 만든 철근 탑 중 하나를 활용해 만든 위령탑입니다.▲순직자위령탑

위령탑 정면에는 순직자위령탑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져 있고 그 옆으로 우류전력주식회사 사장 아다치 타다시 라는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슈마리나이호에 사람을 담아서라고 적혀있습니다.  위령탑이라면, 누가 어떠한 이유로 희생이 되었는지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장의 이름과 ‘사랑을 담아서’만이 새겨져 있다니 도대체 무엇을 위한 탑인지 고민을 남기는 위령탑입니다.▲우류댐 종합안내도

위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우류댐입니다. 이 댐으로 인해 생긴 슈마리나이호는 여름에는 카누나 보트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아름다운 설경을 자랑합니다.


▲슈마리나이호의 한여름(왼쪽)과 한겨울(오른쪽)

호수는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너무나 한가롭고 아름다워 넋놓고 바라보게 됩니다. 한 겨울에는 일본 특유의 사각거리며 뽀득뽀득한 눈으로 뒤덮여 겨울왕국을 방불케합니다.

北海道雨竜郡幌加内町 大字朱鞠内 plus code 852J+5W (Oaja shumarinai Hokkaido, Uryu District, Horokanai) 교통 아사히카와역에서 차로 1시간 반거리이며, 대중교통으로는 후카카와역(JR深川駅-약3시간)이나 나요로역(JR名寄駅 약1시간) 에서JR버스 심메이선(JR深名線)을 타고 미츠마타(三股)정류장에서 내려서 도보 15분  
구글지도 https://goo.gl/maps/6y2Zcmbs7R42

 

기원의 상(いの)
▲정면에서 본 기원의 상

기원의 상은 일본 현지에서 15년동안 4차례의 발굴과 유골 반환을 지속해온 소라치민중사강좌 등 지역주민들이, 댐과 철도 공사로 희생된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고자 1991년 10월 세운 조각상입니다.▲기원의 상 확대 사진 

우류댐에서 광현사로 향하는 길 오른편에 위치한 이 조각상은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아래로 향해 어딘지 모르게 경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조각상 뒤에 세워져 있는 낮은 벽에는 비문이 적혀있습니다.

슈마리나이호의 위령비와는 대조를 이루는 이 기원의 상에는 누가, 언제, 어떻게 희생이 되었는지와 이 문제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기원의 상> 비문

중일 전쟁으로부터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1935년 ~ 1943년) 9년간, 슈마리나이는 가혹한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수천명의 일본인 노동자와 3천명의 한국인· 조선인이 메이우선(名雨線/현재 심메이선深名線) 철도공사와 우류댐 공사에 종사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강제노동의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들은, 차례로 슈마리나이 땅에 뭍혀졌습니다. 전후 부흥의 시대, 우리들은 희생자를 되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1976년 소라치에 하나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철도 공사 댐 공사의 희생자를 조사하고,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고자 하는 모임 ‘민중사를 파는 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슈마리나이에서는 ‘추도법회 협력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참가자에 의한 조사 결과, 이들 공사의 204명(현재까지)의 희생자의 이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36명의 강제연행에 의한 한국인 · 조선인의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1980년부터 네 번에 걸친 발굴 조사로, 슈마리나이 공동 묘지 주변의 조릿대 숲 아래에서 16구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들 유골은 참가자의 손으로 발굴되어 40년만에 유족의 손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의 유골 반환의 여행이 지속되었습니다.

전쟁의 폭풍우 속에서 산속 땅에서 목숨을 잃어간 많은 ‘타코’라고 불리운 노동자의 통곡과 타국에 강제연행된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접하게 된 우리들은 이 운동을 통해서 두 번 다시는 이러한 희생을 강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기에, 희생된 사람들, 유족, 그리고 생명의 존엄에 눈 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이 상을 건립합니다. 이 땅으로부터 인간의 생명의 존엄을 되찾아, 민족의 진정한 화해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1991년 10월 6일

‘생명의 존엄을 지향하고 민족의 화해와 우호를 기원하는 상’ 건립위원회 일동

이 기원의 상이 세워진 이후에도 관련된 활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처음 활동을 시작한 1976년부터 지금까지 40년 이상 이어지고 있습니다.

 

〒074-0742 北海道雨竜郡幌加内町朱鞠内 (Oaja shumarinai Hokkaido, Uryu District, Horokanai) 교통 슈마리나이호 우류댐에서 왼쪽으로 528번 국도를 따라 내려와서 미츠마타(三股) 버스정류장을 지나 오른쪽에 위치

구글지도 https://goo.gl/maps/SLKJnhcCAQP2

 

사사노보효 전시관(笹の墓標展示館)
▲사사노보효 전시관 정면

슈마리나이 강제노동 희생자관련 모든 일들의 시작이자 만남의 장소인 ‘사사노보효 전시관 (구 코켄지 光顕寺 광현사)’는 심메이선·우류댐 강제연행자료관 으로 운영중입니다. 발굴당시 희생자들이 복조리를 만들 때 사용되는 조리대나무 수풀 아래에서 발굴이 되어 조릿대가 이들의 묘표 역할을 했었다는 의미로 ‘사사노보효 (笹の墓標 조릿대 묘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전시관 내부(왼쪽)과 전시관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오른쪽)

1976년 이래 지금까지 강제노동에 대한 연구와 이를 알리기 위한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슈마리나이 강제노동 관련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공사 당시의 사진들(왼쪽)과 방문소감이 빼곡히 적힌 방명록(오른쪽)

정면 양쪽에는 희생자 위패들이 놓여있고 4면의 벽에는 심메이선·우류댐 공사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이 걸어온 발자취들이 전시되어 있고, 최근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기기도 마련되어 전시 내용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는 한국,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방문객들의 글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1934년에 지어져 벌써 80년 이상된 건물 관리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년 겨울 엄청나게 내리는 눈에 무너지지 않도록 지붕 위의 눈을 치우는 작업이 필요하고 목조 건축물 이기 때문에 가끔은 환기도 필요하고 숙식을 제공하고 있는 옆 건물 쿠리는 청소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이불을 가끔은 널어줘야합니다.▲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모습

이전에는 ‘소라치민중사강좌’분들이 현재는 관리 및 다양한 활동을 위해 결성된 ‘동아시아 시민 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서 도맡아해주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다음과 같은 전시관을 설명해주는 설명판이 걸려있습니다.

사사노보효(笹の墓標) 강제노동자료관

 아시아-태평양 전쟁 중 이곳 슈마리나이(朱鞠內)의 우류(雨竜)댐과 심메이센(深名線) 철도 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과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들이 혹독한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200명 이상 희생되었다. 사망자 중 이름과 본적지로 확인된 조선인은 48명에 달한다. 그 희생자들은 가족들조차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역 땅 조릿대(사사) 수풀 밑에 묻혀서 잊혀져 갔다.

1976년 이 곳 코켄지(光顯寺)에서 위패가 발견되어 소라치민중사강좌의 시민활동가들이 유해 조사와 발굴을 시작하였다. 1997년부터는 한국, 일본, 아이누, 재일 동포와 여러 나라의 청년 시민들이 참여하여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의 서로를 이해하고,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을 매년 개최하였다.

이들이 함께 발굴한 유골은 2015년 추석, 고국으로 돌아가 서울시립묘지(파주)의 ‘70년만의 귀향’ 묘역에 안장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추운 슈마리나이에서 희생된 강제노동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그들을 임시 안치했던 이곳에 ‘사사노보효(笹の墓標: 조릿대 묘표) 강제노동자료관’을 조성하여 화해와 평화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2017년 8월 5일

동아시아공동워크숍 2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평화디딤돌 (일본)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그리고 건물 앞 왼쪽에는 슈마리나이 우류댐과 심메이선 철도 공사에서 희생된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명단과 설명글이 적힌 동판과 일본인 타코베야 희생자를 위한 명단을 새긴 기림동판 ‘평화디딤돌’이 나란히 놓여졌습니다.


▲ 전시관 앞에 있는 ’70년만의 귀향’ 동판

동판에는 ‘아시아태평양 전쟁중 홋카이도 슈마리나이(우류)댐과 심메이선 철도공사에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혹독한 강제노역으로 48명이 희생되었다. 가족들조차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유해들은 이역 땅 조릿대 수풀 밑에서 묻혀서 잊혀져 갔다. 1980년부터 소라치민중사강좌의 시민활동가에 의해 발굴된 유골은 1992년과 1998년에 한국의 유족들에게 전달되어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장되었다.

1997년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함께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을 매년 개최하였다. 이들이 발굴한 유골은 2015년 추석, 한국으로 돌아가 서울시립묘지(파주)에 ‘70년만의 귀향’묘역에 안장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추운 이곳 슈마리나이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의 이름을 새겨 ‘평화의 디딤돌’로 삼는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대각선 잔디 위에는 아사지노 발굴지에 끝내 건립되지 못했던 아사지노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는 기억·계승이라고 크게 쓰여진 추모비가 있습니다.


▲ 전시관 오른쪽 잔디밭에 있는  ‘기억 계승’ 아사지노 희생자 추도비

<기억 계승 아사지노 비행장 희생자 추도비>

근대의 홋카이도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원주민인 아이누족에 고난을 강요하였으며, 군국주의의 기지가 되어 타코베야 노동자와 조선인, 중국인의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땅이 되었습니다. 전후에도 많은 희생자의 유골이 남겨져 있었는데, 1970년대부터 슈마리나이를 비롯한 각지에서 유골 발굴이 진행되었고, 혼간지 삿포로별원 등 불교 사찰에서도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2003년에는 ‘강제연행,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포럼’이 발족하여 사루후츠촌에서 한국, 중국, 독일 폴란드에서 많은 삶들과 함께 구일본육군아사지노 비행장 건설공사 희생자 유골 34구를 발굴하여 유족에게 봉환하는 등 동아시아 사람들과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해왔습니다.

내셔널리즘(민족주의)과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극복하고, 전쟁과 억압의 시대를 다시는 초래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함께 이곳에 기억 ·계승의 비를 건립합니다.

2017년 10월 28일

강제연행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포럼
대한민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억·계승의 비 건립사업 유지 일동

 

1997년 첫 발굴 때는 현재의 전시관 건물과 그 옆에 숙박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쿠리라는 건물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정면 나무위에는 오두막도 생기고 바비큐 통과 화덕도 있고 기림 동판과 추모비가 좌우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사노보효 전시관에는 우연처럼 시작된 발굴과 필연처럼 모인 사람들과 역사를 만들어내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쩌면 기적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074-0742 北海道雨竜郡幌加内町朱鞠75WC+2J (Shumarinai, Horokanai, Uryu District, Hokkaido) 교통 아사히카와역에서 차로 1시간 반거리이며, 대중교통으로는 후카카와역(JR深川駅-약3시간)이나 나요로역(JR名寄駅 약1시간) 에서JR버스 심메이선(JR深名線)을 타고 미츠마타(三股)정류장에서 내려서 도보 3분  
 연락처 81-165-38-2017

구글지도 https://goo.gl/maps/ezsfczVm1o72

 

메이우선 철도공사·우류댐 공사 희생자의 추도묘(追悼墓)

▲추도묘의 전경

슈마리나이 발굴지였던 공동묘지 안에는 봉분 형태를 한 묘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묘를 만들 때 돌로 단을 쌓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식 봉분이 있는 것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사실 이 묘는 2001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국에서 힘든 일을 겪고 세상을 떠난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봉분 왼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명판이 세워져있습니다.

<우류댐공사 · 메이우선 철도공사 희생자 매장지> 설명문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슈마리나이에서 행해진 우류댐 공사 ·메이우선 철도 공사에서는, 조선인 강제연행과 타코베야 노동자로 200명을 넘는 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 약 60%가 이 공동 묘지와 그 주변에 매장되어, 전후 오랫동안, 희생에 대한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부터 4년 연속 슈마리나이 주민과 소라치민중사강좌의 손으로 조릿대숲 아래에서 16구의 유골을 발굴했습니다.

1997년과 2001년에는 일본인, 한국인, 재일코리안의 젊은이들 ‘동아시아공동워’숍’에 의해, 추가로 6구를 발굴했습니다.

이들의 유골의 대부분은 신원을 특정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희생자의 유족을 찾고, 유골을 반환하는 운동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봉분은 2001년 워크숍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손으로 만든 조선식 묘입니다.

소라치민중사강좌

그리고 2015년 ‘70년만의 귀향’을 통해 유골이 봉환된 이후 이들을 기리기위해 봉분 앞에 2016년에 ‘평화디딤돌’ 동판이 놓여졌습니다. 동판에는 슈마리나이의 희생자들의 이름, 나이, 본적지, 사망일 목록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졌습니다.

여기에 확인된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서 우리들의 기억에 남겨 다시는 이와 같은 희생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을 다짐하며 ‘평화디딤돌’로 삼는다’‘슈마리나이에서는 조선인 희생자들과 함께 많은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들이 희생되었다.

〒074-0742 北海道雨竜郡幌加内町朱鞠内 플러스코드 75R7+6H (Shumarinai, Horokanai, Uryu District, Hokkaido (plus code 75R7+6H)) 교통 사사노보효 전시관에서 걸어서 15분. 호코카나이쵸 미츠마타 공동묘지(幌加内町三股共同墓地)안

구글지도 https://goo.gl/maps/UCYgXgqpipS2  

 

pdf 파일 다운로드 : 평화디딤돌_1234시간여행자가이드북_북해도-6슈마리나이p.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