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땅으로 가득한 아사지노

아사지노(浅茅野)

아사지노 발굴지와 추도목비 → 아사지노 비행장과 기차역 나무플랫폼 → 신쇼지

오호츠크해를 마주한 일본 최북단의 마을, 홋카이도 소우야군(宗谷郡) 사루후츠무라 (猿払村)는 인구 3,000여명의 어업과 낙농업이 번창한 곳입니다. 이 사루후츠무라의 남단에는 북방 방위와 대미 전시 대응을 위한 구 일본 육군 비행장인 아사지노 비행장이 있었습니다.

사루후츠무라의 아사지노와 하마톤베쓰쵸(浜頓別町) 야스베쓰(安別)에 걸쳐 건설된 제 1비행장과, 이곳에서 약 20km 북쪽의 사루후츠무라 하마오니시베쓰(浜鬼志別)에 제2 비행장이 건설된 것입니다.

제1비행장은 1942년 6월 착공을 시작하여 1944년 겨울에 부대시설과 함께 완공, 제 2 비행장은 1943년 4월에 착공을 시작하여 1943년 가을 부대시설과 함께 완공되었으나, 1945년 9월 폐전후 미군 주둔으로 인해 부대가 해산되어 폐쇄됩니다.

▲젖소가 풀을 뜯는 목초지가 된 비행장

그리고 제1비행장은 농가의 목초지로 제2비행장은 사루후츠무라가 운영하는 목장이 되어, 비행장터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고 젖소들만이 목초지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제는 흔적들만이 남아 현지인의 설명을 들어도 군용기를 숨겨두기 위한 엄체호도 그 형태를 정확히 알아보기 힘든 상태입니다.

이 두 비행장 건설은 급하게 진행되어, 한반도로부터 많은 노동자가 강제로 연행되었습니다. 이들은 배고픔과 가혹한 노동 및 발진티프스 등의 전염병 등으로 수백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증언 및 문건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강제동원된 인원은 300명에서 최대4,000명으로 추정됩니다.


▲제1비행장과 발굴지인 구 공동 묘지를 표시한 항공사진

사망한 조선인들이 비행장에서 멀지 않은 나리타(成田) 연못 주변의 공동 묘지에 매장되어 있다는 정보가 도립 아카히라(赤平) 고등학교의 교지를 통해 알려지게 됩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인들은 정식으로 매장되지 않고 일본인 공동묘지 주변에 시신정도만 수습해 구덩이에 묻혀져있으며, 정확한 징용자수와 매장인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매화장인허증에서 확인할 수 있는 희생자수는 조선인 96명, 일본인 21명, 불명 1명으로 총 118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활주로 공사현장 구덩이에 그냥 던져버렸다는 증언도 있으니 희생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 비행장 건설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발굴은 2005년 10월 시굴에 이어 2006년 1차, 2009년 2차 2010년 3차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2005년 시굴 당시 주민의 협조를 얻어 대략적인 증언을 토대로 시굴을 했는데 거의 완전한 형태의 유골 1구가 나와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아사지노에서 소개해드릴 곳은 아사지노 발굴지와 추도목비,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아사지노 비행장과 기차역 나무 플랫폼, 자체적으로 조선인 희생자 유골을 수습해 모시고 추모를 해준 신쇼지입니다. 전체를 돌아본다고 해도 1~2시간으로 직접 본 아사지노 비행장의 규모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차로 북해도 북부 여행을 왔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합니다.

 

아사지노 발굴지와 추도목비(追悼木碑)


▲아사지노 발굴지와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목비

발굴지가 된 아사지노 구 공동 묘지는 나리타 연못 서쪽의 정수장 왼편에 위치하며, 길에서 약 60m정도 안쪽의 낮은 야산에 있습니다. 공동묘지는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이미 폐쇄되어 있고, 느릅나무 등이 무성하게 자라있어 이곳이 공동 묘지였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이며, 출입구도 찾기 힘든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인 묘는 전부 이장되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골은 일본에 연고가 없는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몸이 구부러진 형태로 매장된 유해

▲몸은 3구인데 두개골이 하나밖에 없는 유해

2006년 1차 발굴은 겨우 25~30cm만 파들어가도 뼛조각들이 제법 나왔습니다. 일본인과 달리 조선인이 죽으면 땅을 대충 파서 묻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과 2010년 추가 발굴에서는 이들의 시신은 정사각형의 나무상자에 굴장(屈葬: 시체를 매장하는 방법의 하나. 시체의 팔다리를 굽혀 쭈그린 자세로 매장) 형태로 넣어 매장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여러 구의 주검을 그냥 던져버렸는 지 포개진 채로 나온 것도 있었습니다. 몸은 3구인데 두개골은 하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토질 토양이라 나무뿌리가 밑으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나가면서 유골을 감싸 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사지노 구공동묘지에서 2005년 시굴시 1구를 발견한 후 2006~2010년 총 3차례 조사에서 모두 30~40개체의 유해를 확인하였습니다.

일본의 매장 문화는 철판위에서 화장한 후 유골함에 담아 납골묘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발굴된 유해들은 제대로 화장이 안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구덩이를 파서 그냥 뭍는 형태로 되어있는 등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해로 생각됩니다.

발굴지에는 ‘구일본육군 아사지노 비행장 건설공사 조선인희생자를 추도함’ 이라는 나무로 된 묘표가 세워져 있습니다.

묘표 앞에는 꽃들과 커피가 놓여져 있었는데, 발굴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던 아사지노 안내를 해준 미즈구치 고이치(水口孝一) 씨가 발굴이 끝난 다음에도 매해 오봉(추석)에는 와서 향도 피우고 추모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마을에 있었던 강제노동의 역사를 마주하고 물심양면으로 발굴을 도왔던 사람들이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2013년 12월 제막식만을 남겨둔 몇 일전 우익들의 협박이 이어졌고 안타깝게도 추모비는 제막식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았으나 여의치 않아 4년후인 2017년 10월 슈마리나이 사사노보효 전시관 앞마당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098-6102北海道宗谷郡猿払村成田の沢

교통 나리타 연못(成田の沢) 서쪽의 정수장 왼편에 위치하지만, 도로가 명확하지 않아 위치를 잘 아는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

구글지도 https://goo.gl/maps/GoLP4aJnmNG2
 (정확한 주소가 나오지 않아 대략적인 위치표시)

▲추도목비 앞에 놓여져있는 커피 두잔

 

아사지노 비행장과 기차역 나무 플랫폼


▲끝없이 펼쳐진 아사지노 비행장

1500m*300m미터의 활주로와 1500m*150m의 활주로가 십자가 형태로 교차되는 형태의 활주로 공사는 전압(転圧)식 활주로입니다.

▲비행장과 관련 시설을 표시한 사진

전압이란 땅을 고르게 다지는 것으로 원래는 나무, 돌, 쇠 따위로 둥근 통처럼 만들어서 소나 말에게 끌게 하는데 당시는 이를 강제노동자를 시켰다고 합니다. 또 다른 활주로 1200m*60m는 빨리 완성시키기 위해 나무판을 깔아 완성했습니다.

현재 비행장터는 목초지가 되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근처에는 정문과 급수시설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비행장 옆을 가로지르던 철도는 사라졌지만,  당시 기차역으로 사용하던 나무 플랫폼이 남아있고, 마치 활주로가 얼마나 길었는지 알려주듯 나무 플랫폼 옆 철로가 도로가 되어 끝이 보이지 않 을만큼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차역 나무 플랫폼(왼쪽)과 지금은 아스팔트로 덮인 철로(오른쪽)

또한 주변에는 아직도 ‘비행장앞’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이 자리하고 있고 도로는 현재 북 오호츠크 사이클로드라는 이름의 자전거도로가 되었습니다.


▲비행장은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비행장앞 버스정류장(왼쪽)과 사이클로드 표지판(오른쪽)

▲비행기들을 대피시키는 방공호

저 멀리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언덕은 비행기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방공호(엄체호)입니다.얼핏봐서는 수풀로 많이 가려지고 언덕처럼 보여서 설명을 들어도 무엇인지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콘크리트 건축물의 토대

부대 위문과 감시 초소의 기초였던 콘크리트 건축물 역시 수풀에 가려져 어떤 형태였는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비행장을 건설하려면 수풀들을 먼저 잘라내야했고, 그 단면은 뾰족해져 날카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신발도 없었던 당시에 땅을 고르기 위해서 거의 맨발로 그 위를 걸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는 이곳을 거의 맨 발로 비행장을 건설했다는 당시가 어떠했을지, 넓디 넓은 목초지에 그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 그리고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당시의 노동의 강도를 말해주는 듯 합니다.

 

〒098-6102北海道宗谷郡猿払村浅茅野台地342-301(342-301 Asachinodaichi, Sarufutsu-mura, Sōya-gun, Hokkaid) 교통 구글지도가 표시하는 비행장앞 버스정류장을 기준으로 대략 1.5km 사방이 비행장
구글지도 https://goo.gl/maps/8FAhgzsNQJM2

 

신쇼지(信證寺)

▲신쇼지 전경

아사지노의 신증사의 육각당에 건설현장에서 강제연행되어 희생된 조선인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었고, 사망한 100여명의 조선인의  사망년원일·사망원인·사망시의 연령·이름 등이 기록된 과거장(過去帳)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절의 주지인 나라쿠리오(奈良陸雄) 스님은 비행장 터 부근에서 유골을 발견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육각당에 모시고 지금까지 공양해 왔다고 합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유골은 화장된 듯하지만, 거의 타지 않은 채 묻힌 것 같으며, 아사지노 근처 나리타(成田) 연못 근처에 유골이 남아있을 거라고 증언해주었었습니다. 그곳은 1950년대까지 마을의 공동 묘지가 있었다가 잦은 범람으로 일본현지인들은 모두 이장을 했고 이후 폐쇄된 곳이었습니다.


▲본당 왼쪽에 마련되어 있는 육각당(왼쪽)과 내부에 모셔져있는 한국인 위령패

신쇼지 절 왼쪽 4~5개의 계단위에 육각형 모양의 작은 건물이 한 채 있습니다. 문을 열면 정면에 큰 불상이 모셔져 있고 그 오른쪽으로 나무 위패가 있는데 ‘아사지노 비행장 공사순난 한국인 위령’이라고 써있고 현재까지도 공양 및 추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098-6101 北海道宗谷郡猿払村 浅茅野336−42 (Hokkaidō, Sōya-gun, Sarufutsu-mura, Asachino 336-42)

) 연락처 +81 1635-5-7034
구글지도 https://goo.gl/maps/5jKZNdQt9wt  

 

pdf 파일 다운로드 : 평화디딤돌_1234시간여행자가이드북_북해도-7아사지노p.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