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나와 이웃의 장소를 찾아서”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잊어버린다. 특히 안 좋은 과거일수록 빨리 잊어야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독일에서도 나치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그동안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잊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을 이겨내고 지금 정도의 과거 청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시민 사회의 지속적이고 끈질긴 노력은 결국 독일 연방과 주정부를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 단위의 행정 조직의 변화도 이끌어 냈다. 독일 전역에 나치의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있는 다양한 ‘기억의 장치’는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게덴크슈테트(Gedenkstätte)’라고 불리는 장소, 건물, 시설, 조형물 등이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기념 장소’ 혹은 ‘추모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곳의 성격이 단지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곳으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이곳은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기록하고 보여줌으로써 방문자들이 그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

이를 통해,
방문자들을 그 사건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사회의 지속적인 과거 청산 노력은 가해자 혹은 피해자 중심의 ‘감성적인’ 분노와 반성을 넘어, 과거의 역사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이를 기억할 수 있어야 그 사회의 ‘발전적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반성과 용서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제 회의의 집 (Haus der Wannsee-Kondernz) ‘반제 회의’가 열렸던 빌라, 베를린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이 건물은 1915년, 베를린 반제 호수가에 지어진 고급 빌라이다. 나치 시절, 나치의 친위대가 사용하였고 1942년 1월 20일, 이곳에서 ‘반제 회의’가 열렸다. ‘반제 회의’는 나치당과 독일 정부의 고위급 인물 15명이 ‘유럽 유대인 문제의 총괄적 해결’을 위해 모인 회의를 말한다.

이들은 히틀러 제 3 제국의 안보국 부장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Reinhard Heydrich)의 초대로 모여 ‘최종 해결’ 즉,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을 의도적으로 주도 면밀하게 몰살하거나 학살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 토론했다. 이 빌라는 1992년부터 ‘반제 회의’에 관한 기록물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과 관련 교육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장소들 (Orte des Schreckens, die wir niemals vergessen dürfen)”, 베를린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마치 광고판처럼 생긴 이 설치물은 거리 표지판도 지역의 명소를 알리는 문구도 아니다. 여기 나열된 장소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장소들! (Orte des Schreckens, die wir niemals vergessen dürfen)”이다. “아우슈비츠, 슈투트호프, 다하우, 라벤스브뤼크..” 그 외 다른 설명은 없다. 나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추방된 후 학살당했다.

베를린에는 나치의 역사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약 3,100여 개의 다양한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장치들의 존재는 주변 거리 풍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그 앞을 무심히 지나다니고 있지만 이러한 설치물을 통해 잠시라도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삶의 이정표’와도 같은 장치인 것이다.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억의 탑 (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지하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자료 센터 (Ort der Information)’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 꽤 넓은 부지에 탑처럼 보이는 기둥들이 서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다. 19,000m² 면적에 서로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기둥 2,711개로 구성된 이 장소는 히틀러 정권 당시 나치 본부와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이 건물들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모두 파괴되었고 독일이 통일 될 때까지 빈터로 남아있었다.

통일 후 독일 정부는 이곳을 나치로부터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장소로 만들기로 하고 그에 적합한 작품을 공모하여 오늘과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설치 후, 이곳이 단지 유대인 희생자만을 위한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비판과 토론이 있었다.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현재 이곳은 홀로코스트의 여러 희생자들(신티와 로마, 사회주의자, 동성애자, 기독교인 등)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곳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메모리얼은 크게 지상의 탑과 지하의 ‘홀로코스트 자료센터 (Ort der Information)’로 구성된다. 지하 정보관에는 ‘이름의 방(Raum der Name)’이 있다. 이 방에서는 약 6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이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삶을 낭독해준다. 모든 희생자들의 삶의 기록을 한 번 읽기 위해서는 약 6년 7개월 27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 메모리얼이 2005년 문을 열었으니, 이제 두 번째 낭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료실에는 그들이 수용소에서 썼던 일기,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자칫 600만 명이라는 숫자로 추상화될 수 있는 희생자들을 한 사람의 구체적인 개인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나치로부터 박해받은 동성애자들을 위한 기념물 (Denkmal für die im Nationalsozialismus verfolgten Homosexuellen)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2008년에 설치된 이 기념물은 콘크리트 육면체로 되어 있다. 한 면에는 창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창문을 통해 안 쪽에 있는 모니터를 볼 수 있다. 이 모니터에는 함께 있는 여러 동성애 커플들의 모습이 보인다.

독일에서는 1871년부터 1994년까지 형법 175항에 의해 남성간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했다. 1871년에 제정된 이 법률을 근거로 나치 정부는 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나치 집권 전인 1932년에는 약 800명이 처벌을 받았으나, 나치 정권 하인 1938년에는 약 9,500명이 유죄 판견을 받아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감옥에 수감되었다. 1994년까지 이 법률은 서독 형법에 남아 있었으며, 폐기되기 전까지 약 140,000명이 이 법률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법률로 인해 남성동성애자들에 대한 탄압은 전후 독일 사회가 나치에 의한 희생자들을 발굴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도 배제되어 이들은 ‘잊혀진 희생자’들로 남아있었다. 1980년대 들어, 이들에 대한 기억과 추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이들의 희생을 기록하고 추모하기 위한 여러 관련 단체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2003년,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독일 연방정부는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내에 이 조형물의 설치를 허락했다.

나치 시기 여성 동성애자에게도 많은 탄압과 박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기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나치는 여성 동성애자들을 ‘반사회적’이란 죄목으로 처벌하고 강제 수용소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간 동성애 자체를 부정했다. 또한 여성 피해자와 희생자들은 기념물 설치 논의 과정에서도 배제되었다. 하지만 여성 동성애 단체와 개인들의 노력을 통해, 현재 이 기념물은 여성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베를린 그뤼네발트역 17번 플랫폼 (Berlin-Grunewald, Mahnmal Gleis 17)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1945년 5월 19일 / 24명의 유대인 / 베를린 – 아우슈비츠”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베를린 남서쪽 외곽에 자리한 이 역은 1879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이 역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베를린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나 게토(Gettos)로 추방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1998년 이 역을 관리하는 ‘독일철도(Deutsche Bahn)’는 자신들의 전신인 ‘독일제국철도(Deutsche Reichsbahn)’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추방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 당시 가장 자주 사용된 17번 플랫폼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의 각 기업체들은 과거 자신들의 나치 협력 사실을 기록하고 보존하고 있으며, 회사 직원들에게도 그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 (Konzentrationslager Ravensbrück)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figcaption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의 여성 감시자들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를 방문한 이옥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2013년 9월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약 90km 떨어진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에는 나치의 여성 강제수용소가 있었다. 이 수용소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친위대에 의해 만들어져 관리되었으며, 약 132,000명의 신티와 로마, 유대인 여성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나치는 이 여성들을 다른 수용소로 보내 카포(Kapo, 수용소 수감자 중 나치들의 지시를 받아 다른 수감자들을 감시, 관리하던 사람)와 일반 수용자 중 작업 실적이 우수한 사람들에게 매춘하도록 강제했다.

이 수용소 기록관에는 인상적인 전시물이 하나 있다.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과 사진들. 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이들은 당시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여성 감시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범죄자’로 기록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196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시민 사회는 나치 시대 부역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나치 친위대나 일부 정치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나치 정권하에서 수많은 공직자들과 사업가, 교사, 농장주들 등이 사람들을 박해하고 학살하는 데도 가담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자행된 ‘평범한 개인’들의 행적을 범죄로 인정하고 그러한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독일 사회에서도 개인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하는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 사회는 개인들의 책임까지 물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도 반성할 수 있어야 공정한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쪽으로 힘을 모았다. 이 수용소에 전시된 기록은 그 노력의 결과이다.

2013년 9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독일에 오셨던 이옥선 할머니가 이 수용소를 방문하셨다. 할머니는 나치 치하 독일에서도 여성 강제 매춘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셨고, 희생자들과 피해 여성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도나우 강변의 신발들 (Schuhe am Donauufer), 헝가리 부다페스트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아름다운 야경의 도나우 강변,
누군가 벗어둔 신발이 보인다

강변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잠시 도나우 강에 발을 담그려고 벗어둔 신발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세히 보면 이 신발들은 모두 철로 만들어져 있고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

사실 이 신발들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헝가리 파시스트당인 ‘화살 십자당(Arrow Cross)’의 당원들에 의해 살해된 유대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조형물이다. 당시 ‘화살 십자당원’이 유대인들을 도나우 강변에 줄 세운 뒤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하고 총살했다. 그리고 그 시신을 그대로 강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이 설치물의 작가는 “1944년부터 1945년, 화살 십자당원에 의해 총살되고 도나우 강에 버려진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처럼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는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와 파시스트에 의해 살해당한 개인들을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있다.

베를린 네오 나치 시위대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10대의 네오 나치 시위 참가자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독일 시민 사회와 정부는 나치 시기 독일의 역사를 분명하게 기록하고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한 독일의 방송사, 언론사, 출판사들은 나치 시대를 테마로 다양한 영상물, 신문 기사, 도서, 기록물 등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독일의 기업체 중에는 나치에 협력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이러한 독일 사회와 정부의 노력은 나치 피해자들과 주변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치 시대를 정당화하고 나치즘을 추종하는 사람들 역시 독일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 역시 우리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베를린 나치 반대 시위대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집에 걸린 나치즘 반대 현수막 “Nie Wieder Faschismus (never again Fascism)”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나치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고, 그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을 말하고 있으며, 기회가 되면 힘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네오 나치라는 ‘과거의 유령들’과 맞서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며, 그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독일 사회는 그렇게 해왔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도 패전 직후에 바로 과거 청산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먼저 ’68세대’와 같은
시민들의 각성이 있었다

이들은 나치에 의해 자행된 학살은 본질적으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들에게 가해진 반인륜적 범죄이며, 일반 시민들 또한 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이들은 독일 역사에서 나치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기록해야 하며, 또한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잘못된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과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갈 수 없다는 자기반성을 한 것이다. 이러한 시민 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이 정부 기관의 관료들을 움직여 행정에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e, 걸림돌), 베를린 ⓒ 츠카다 야지마(Tsukada Yajima)

베를린의 거리를 걷다 보면 네모난 동판이 자주 눈에 띈다. 그것은 그다지 크지 않은 작은 동판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거기 쓰인 글씨가 그 거리에 살던 사람이 언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는지 알려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동판의 이름은 ‘슈톨퍼슈타인 (Stolpersteine, 걸림돌)’이다.

슈톨퍼슈타인은 ’68세대’ 조각가인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가 1996년부터 개인적으로 시작한 예술 프로젝트이다. 그는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가로, 세로 10cm 크기의 동판에 희생자의 이름, 출생연도, 추방/사망 날짜를 새겨 그들이 마지막으로 살던 집 앞, 길 가에 박아 놓았다. 이 황동색의 기념물은 현재 베를린에만 5,000 개 이상이 있고 전 유럽에 걸쳐 56,000개 이상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밟도록 땅에 박는 것을 반대하는 유족들도 있고, 설치 자체를 불허하는 자치 정부도 있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군터 뎀니히는 희생자가 ‘여기 살았던(hier wohnte)’ 사람, 바로 당신의 이웃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동판은 특별히 마련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공간에 박혀있다. ‘걸림돌’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붙든다. 누군가는 그 돌을 보고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군터 뎀니히는 ‘사람은 그의 이름이 잊혀질 때 진정으로 잊혀진다’고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가나 민족의 이름으로 반인륜적 범죄가 정당화되어 이러한 비극은 반복되었다. 반인륜적 범죄의 희생자 개인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이 비극을 끊어내는 일의 시작이다.

필자
츠카사 야지마(Tsukasa Yajima)
사진작가, 베를린 거주

주요 활동: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활동
독일 네오 나치 대상 취재

최근 전시:
2015. Verbotene Bilder (금지된 그림) 전시회 기획, 베를린
2015. 야스쿠니 반대 평화 페스티벌, 베를린
2016. Fukushima the Aftermath,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