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평화디딤돌, 첫 돌 놓기의 현장

4월 4일 답사에서 4월 5일 첫돌 놓기까지의 현장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필자로 소개드린 저를 포함, 그곳에 계셨던 몇 분께서 글과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시간 순으로 함께 엮습니다.


4월 4일, 평화디딤돌 놓기 준비

이 동네 사람이
살던 곳을 찾아서

4월 4일 월요일 아침, 평화디딤돌 대표인 정병호 교수와 ‘평화디딤돌’을 디자인한 김운성 작가와 함께 예비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평화디딤돌’ 놓기의 시작으로 작년의 ’70년만의 귀향’을 통해 일본 홋카이도에서 고국으로 모신 115명의 강제노동 희생자 중에서, 우선적으로 주소지가 확인된 서울 출신의 강제노동 희생자 세 분을 기억하는 ‘평화디딤돌’을 그분들이 살았던 곳에 놓기 위해서입니다.

서울 출신 강제노동 희생자의 주소지를 현재의 지번에 맞춰 표시한 지도 ⓒ 평화디딤돌

그분들의 생전 주소지를 현재의 지번과 비교해 표시한 지도를 가지고, 그분들이 살았던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서울 돈의동 42번지, 서울 종로 5가 179번지, 서울 신당동 162번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분들이 생전에 살았을 그 공간에는 세월이 흘러 상가, 주차장,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일상 공간에 잊혀간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살았음을 알리고 기억될 수 있도록, 그분들이 살았던 곳 근처의 지하철 역 출구와 공원 인근에 기억·진실·평화의 상징물로써 ‘평화디딤돌’을 놓고자 하였습니다.

강제노동 희생자의 주소지 인근인 신당동 서울중앙시장 북쪽 입구 방향 공원을 예비답사 ⓒ 오승래

전날의 예비 답사와 준비를 마치고, 4월 5일 화요일 아침 이번 행사와 ‘기억의 예술’ 국제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일본과 독일에서 오신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 킨조 미노루 작가, 군터 뎀니히 작가, 그리고 한국의 김서경·김운성 작가 등과 함께 첫 ‘평화디딤돌’ 놓기를 진행하였습니다.

마침 이날은 전통적으로 조상을 모시는 한식이었습니다. 작년에 고국으로 모신 강제노동 희생자 115명 대부분의 유가족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을 감안하였을 때, 이제라도 저희의 손으로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파주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 조성한 ’70년만의 귀향’ 묘역을 함께 찾아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이날의 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4월 5일 화요일 오전 10시 종로 3가 역 5번 출구

오전 10시, 지하철 종로 3가 역 5번 출구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평화디딤돌’을 놓는 사람들, 이를 함께하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온 사람들, 이를 취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소처럼 이곳을 지나치다가 행사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 생각보다 많은 시민 분들께서 관심과 흥미를 가져주셨고, 그동안의 역사와 ‘평화디딤돌’ 놓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드렸을 때 공감하시며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분들이 이곳에 살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며 ‘평화디딤돌’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막연하게 불특정 다수의 강제노동 희생자로 불리는 잊혀가는 개인들이 실제 ‘이 동네 사람’으로 바로 이곳에 존재하였다는 것이 사실의 증거로 기록되고, 사람들에게 계속 기억됨으로써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운성 작가에 의해 종로 3가 역 5번 출구 인근에 놓이는 첫 ‘평화디딤돌’ ⓒ 오승래

모두의 마음을 모아 첫 번째 ‘평화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의 힘을 모아 설치한 ‘평화디딤돌’ 동판은 새겨진 글씨가 쉽게 없어지지 않으며, 만지면 만질수록 광택이 살아나며 반짝이도록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평화디딤돌’을 놓은 후 평화디딤돌 대표인 정병호 교수, 일본 홋카이도에서의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과 귀향의 주체인 도노히라 요시히코 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대표, 독일 전역에 나치에 의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긴 ‘걸림돌’을 박아나가 한국의 ‘평화디딤돌’ 놓기 사업에 영감을 준 군터 뎀니히 작가, 그리고 일본의 킨조 미노루 작가와 한국의 김서경·김운성 작가가 함께 손을 모아 ‘평화디딤돌’을 쓰다듬으며 강제노동 희생자를 기리고 그분들이 잊히지 않고 기억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잊히지 않고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염원하며 ‘평화디딤돌’을 쓰다듬는 참가자들 ⓒ 오승래

글| 오승래


4월 5일 정오 종로 5가 역 6번 출구

4월 5일 정오 지하철 1호선 종로 5가역 6번 출구 앞, 이 동네 사람 ‘현․ 종․ 익’.

주변의 어르신들이 웅성거렸습니다.

“뭐하는 거여?”

“옛날에 이 동네 살던 사람이 징용 가서 죽었데”

“그때 징용 간 사람들 많았지”

몰려든 사람들에게 행사 팜플렛을 나눠 주었습니다.

종로 5가 역 6번 출구 앞 이 동네 사람을 위한 소박한 장미꽃들 ⓒ 오승래

“장한 일들 허네”

혹여 불미스러운 마찰이 걱정되었던 나로서는 안도감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음에 그곳을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것이 그 기억의 힘이 될 것입니다. 자그마한 첫 돌을 놓았지만 이제 시작이다. 한반도 곳곳에 놓여지는 이 작은 돌이 누군가에는 아픔을 치유하고, 누군가에는 희망을 주는 그런 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글| 윤정구


4월 5일 오후 1시 신당동 중앙시장 북쪽 출입구

희생자 본적지 방향(신당동 중앙시장 북쪽 출입구)을 마주하고 놓인 디딤돌 ⓒ 오승래

종로 5가를 떠나 오후 1시 신당에 도착했습니다. 블록을 세척하고 설치를 준비합니다. 석재용 에폭시 접착제와 경화제를 1대 1로 교반합니다.

신당에서의 세 번째 디딤돌 설치 준비 모습 ⓒ 한효주

드릴 비트를 갈아 낍니다. 전날 답사에서 마주친 어르신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동네의 터줏대감 한 명 한 명을 바삐 불러 세웠습니다.

오후 2시 설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신을 못 찾았다고?”

“근디 이걸 왜 놔?”

“아니, 그러니까..여기 이분이 일본 스님인데, 여기가 일본에서 그걸 발굴했대”

“그래서, 여기 살던 데 근처에다 놓을라나벼”

“어이, 여기 전기가 안 들어와. 전기가.”

“혹시 주변에 아시는 분 없으세요?”

“아니, 어이 저기 일로와봐”

“자네 자제 가게에서 좀 끌고와봐”

전기를 끌어왔습니다. 오후 2시 10분, 블록에 천공을 냅니다. 설치가 시작되었습니다. 2시 20분, 도노히라 요시히코의 독경으로 추도 의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끼나와의 킨죠 미노루가 외칩니다.

“이 동네, 70년 전의 기억임에도, 이 엄청난 시간의 역사가 이 한 곳에 새겨져 있다는 것에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오사까 재일동포 조박이 입을 엽니다. 

“눈물이 난다. 억울함에..”

글| 채승언


내가 살아가는 이 곳에서, 정을 나누며 살다가 멀고 먼 북해도에서 끌러가 스러져갔던 강제징용 희생자들이, 이 동네 사람임을 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픈 과거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지나가버린 역사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 가족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평화디딤돌 놓기에 동참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